2009년 9월 1일 화요일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_진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1.부딪히고, 구르고, 물들다

2007년 가을 인사동에서 달맞이 축제가 있던 날 이었다. 추석이라 여느 날의 인사동 거리보다는 조금 한산하게 느껴지던 남인사마당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큰 무대가 되어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무대 앞을 채워갈 수록 긴장감은 커져만 갔다. 조용히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손이 조금씩 떨려 왔다. 내가 촌닭들에 들어온 후 첫 정식 공연이 있는 날 이었다.

조명이 환한 무대 위에 올라섰다. 무대 위에선 잘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관객들이 너무 잘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읽어보려 노력했다. 이 공연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떤 공연을 상상하고 있는지 관객들의 표정을 통해 읽어보려고 했다. 그 얼굴들을 상상하면서 공연을 시작하고 끝을 냈다. 공연이 정점에 다다랄 수록 점점 가슴이 벅차올랐다. 관객들을 상상하면서 공연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그 벅차오름은 관객들의 반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실수를 했다. 너무 우왕좌왕하고 리듬, 브레이크들을 사정없이 틀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첫 번째 공연의 설레임과 떨림으로 충만했었다. 그리고 이 공연으로 비로소 ‘촌닭들이 되었구나! 이제 정말로 촌닭들로 시작을 하는 구나’ 란 생각을 했다.

작업장학교의 음악,공연팀인 촌닭들에 들어오면서 기대를 했던 것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나와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공연) 것들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과, 늘 내게 부족하다 느끼는 것에 대면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랬었다. 생각해 보면 촌닭들에 들어간 것은 어찌 보면 나에 대한 도전이었다. 함께 촌닭들에 들어간 친구들 중 촌닭들에게서 초대를 받았거나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스스로 공연 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였지만 나조차도 자신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며 망설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겁이 났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공연 팀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려움에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무대에 서는 일을 해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일까? 하는 기대를 강하게 품고 있었다. 너무 신날 것 같았고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도전 해보고 싶단 마음으로 촌닭들 행을 질러놓긴 했지만 막상 들어오고 보니 걱정한 데로 였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잘 웃지도 못하고 공연을 할 만한 재주도 없었고, 몸동작이 좋지도 않았다. 길찾기 쇼하자 때 무대 위에서 자서전 몇 줄 읽는 것도 딱딱하게 굳어서, 무표정도 아니고 화난 것처럼 했었는데 밝게 웃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공연을 할 때 뿐 아니라 누가 칭찬을 해도 웃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배우게 되는 것들은 꼭 나를 다시 만들기 위해 배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실망을 하거나 하진 않았었다. 공연 팀 들어오면서 기대한 만큼 각오한 것도 있었고 그만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무작정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촌닭들에 막 들어가고 한참 악기니 노래니 하는 것들을 처음 배울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이 있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나도 계속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연습을 했다. 집에 가서 매일 얼굴 근육이 떨릴 때 까지 웃는 연습을 하고 다음날이면 또 굳어진 채로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을 반복했다. 악기몸동작도 연구해 보았다. 악기를 매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지하 연습실 거울 앞에서 악기를 매고 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해서 그랬던 것일까? 공연 모니터를 해보면 항상 얼굴이 악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만큼 내 표정 몸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온통 신경이 나에게만 쏠려 있었다. 오로지 나만이 나의 도전과 고민의 대상이었다. 다른 악기소리를 잘 듣지 않았었는데 일부러 안 듣는 것이 아니고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그 때 나에게 ‘팀’ ‘동료’ 이런 단어는 아직은 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사이에도 촌닭들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사람들이 나가기도 새로 들어오기도 그랬다가 다시 나가기도 하고 자주 싸우고 회의도 많이 했지만 왜 그런지 자세히 알려 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지금 기억하는 것은 그저 ‘많은 일’ 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 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어딘가에 섣불리 나서기엔 자신이 없다고 지금은 아직 배우는 중이고 준비할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거나 내가 무언가 된 사람처럼 느껴졌다거나 어느 반짝하는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차츰,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 더욱이 공연을 한다는 것은 나만 잘해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집중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것만 신경을 쓰다보면 ‘나’ 이상을 넘어다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연자 각각의 역할과 기량에 충실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너머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각각이 맡고 있는 악기의 성격을 잘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내가 주로 치는 까이샤라는 악기는 기본리듬의 빈 소리를 채워주면서 많이 튀지는 않지만 소리의 바탕이 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높은 소리를 내며 굉장히 뛰어야 하는 땀보린이나 헤삐끼 같은 악기도 있고 정박을 잡아주어야 하는 수루두 같은 악기도 있다. 한 곡 한 곡이 공연을 통해서 잘 어우러지고 좋은 음으로 전달되기 위해선 연주를 하는 사람부터 자신이 들고 있는 악기뿐만이 아닌 함께 하고 있는 악기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긴밀한 어울림을 만들 수 있도록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팀’이라는 것 역시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 같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저 준비된 개인들이 모여 팀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각자가 개인별로 충실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옳지만 ‘팀’은 그저 그렇게 완전한 개인들이 모여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편 그저 ‘전체’ 안에 숨어버리게 되는 것 역시 ‘팀’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보다 스스로가 주체로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주체적이 된다는 말은 그만큼 책임을 다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자신이 만든 팀 안에 있어야지 자칫 ‘내가 아니라도’ 하고 뒤로 빠지면서 다른 사람이 만든 팀 안에 숨어버리게 된다면 그 안에서 ‘팀’과 ‘팀원’의 이상적인 관계는 형성될 수 없는 것 같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해 본 것은 손색없이 완벽한 준비가 될 때만을 기다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혼자서만 생각하고 연습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그리고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더더욱 새롭게 알게 되고 극복하고 깨달으면서 단단해 지는 것처럼, 하자의 중요한 학습 원리중 하나인 직접해보고 문제를 겪고 배우게 되는 것 learning by doing(경험을 통해 배우다) 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 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핑계가 되고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2. 무참한 빨간 펜에 휘둘리지 않기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길찾기를 시작한 2007년은 나에게 너무 많은 변화를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나에게 2007년 17살이 되던 해에 만나게 된 도시라는 곳은 어쩌면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작업장 학교 역시 나에겐 새로 만나고 적응해야 할 숙제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발견된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마주치게 된 그 일들이 특별히 힘들다는 느낌보다 그런 일들을 접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충격 받았던 일들이 실은 나를 더 괴롭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로 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서울에 와서도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설레기도 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나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예전과 같은 모습 혹은 새로운 환경에 기가 죽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만나게 되면 답답하고 속상하고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특별하게 튀거나 거리낌 없이 무작정 자신감 있어 보이는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저 그동안 학교에서부터 쭉 그랬던 것처럼 분위기나 사람이나 환경에 기가 죽어서 내 모습이 무엇인지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사실 공간이 바뀌었다고 이미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던 내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이 억지스럽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매번 나에 대해 확인하고 실망하면서 내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길찾기과정을 보내면서 나를 지지한 동기이자 목표가 되기도 했다.

길찾기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하자에선 내 속의 생각을 말로 이야기 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표현할 줄을 몰랐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이런 점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다. 꽃씨파티 기획이니 쇼하자 준비니 하는 것들도 힘들긴 했지만 나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전적 글쓰기였다. 길찾기에 들어와서 자서전이란 것을 써보면서 처음으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본 경험도 없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어려운 동시에 꺼려지는 일이기도 했다. 밤을 새서 열심히 써 가면 여기저기 그어지는 빨간 펜과 질문들이 그 시간을 두렵게 만들곤 했다.

자전적 글쓰기 강사 평가서 ‘열심히 공들여 쓴 흔적은 역력한 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저기 눈에 뛰는 허술함이 보여 무참히 빨간 펜을 휘두르기도 했었는데...’ 라고 시작을 하여 초고에 비해 가장 향상된 결과물 이었다’ 라고 맺고 있었다. 나의 말을 글로 표현해 본 경험은 그 것이 처음이었다. 그건 나에게 매우 고달픈 일이었다. 그냥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힘든데 글로 풀라니.... 처음으로 이런 작업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가지고 말을 하거나 글로 쓴다는 것이 나의 존재를 만드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자전적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너무 힘든 일이었던 동시에 어쩌면 행복했던 작업일 수도 있다. 물론 그때는 ‘행복했다’ 뭐 이런 감정을 느끼진 못했지만 점점 내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찾으려고 했던 첫 번째 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내 의사를 밝히면서 내가 여기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니 진이 좀 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줄 필요가 있다고.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었는데 말을 하거나 나서는 일에 한발 물러설 때마다 속상해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난 워낙 내성적인 아이니까’ ‘아직 처음이라 적응 중 이라서 그래’ 이런 종류의 핑계를 대면서 내가 할 일을 찾기 보다는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부러워하는 성격을 가진 아이들은 계속 내가 있다는 표현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좋은 점을 볼 줄 몰랐다. 그 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보다는 ‘내가 변해야 한다.’ 는 생각을 했다. 실상은 난 그런 성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닌데 내가 더욱 나를 표현할 길을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여전히 이런 일이 어렵고 서툴지만 이제 나를 포장하려 하지 않고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에 신경을 쓰고 싶다.

3. 엑터 계약서 플러스알파 (+∝)

주니어 과정으로 공연팀인 촌닭들에 속해 있던 나에게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것 같지만 이런 말을 툭 던진 적이 있다. ‘너 공연 팀 이었어?’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말이었지만 그 때 나에게 그 말을 적잖은 충격을 주었었다. ‘아니 어쩜 모를 수 가있지?’ 그 사람이 별로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고 좀 장난 끼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주위 깊게 주위를 살피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이런저런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촌닭들에 처음 들어와서 썼던 엑터 계약서의 약속이 생각이 났다. 아마 첫 번째 약속이 ‘열심히 연습해서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였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던 최소한의 약속이었단 생각이 든다. ‘아 이왕 약속할 거 목표라도 크게 좀 잡지 아니 왜 열심히 연습해서 겨우 방해가 되지 않게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내가 했을만한 약속 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나는 촌닭들 안에 있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아직 공연도 잘 못하겠고 노래도 못하겠고 악기는 그나마 재밌게 칠 수 있어서 악기에 대한 애착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조용히 내가 할 일만 했다. 그 때의 나에게 그 사람이 했던 말은 점점 무기력증과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있는 듯 없는 듯 내가 할 일만 하고 만사 귀찮아하면서 그 약속을 은근한 핑계 삼으며 지내고 있던 그 때의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리고 아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팀 안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좀 더 촌닭들 안에서 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렇지만 급하지는 않게 나의 역할을 찾으려고 했다. 여전히 내가열심히 하면 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금은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촌닭들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때론 촌닭들 이라는 팀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져서 전체적으로 ‘자극제’ 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많이 있었다. 분위기라는 것이 무서운 게, 한사람이 퍼트리는 분위기가 금세 퍼져 나가서 촌닭들 전체의 분위기가 되곤 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촌닭이 아니라 병든 닭이라고 조류 독감이 퍼졌다는 식의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난 그게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감정의 기복을 잘 타는 것이 너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학기 중간쯤 되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기보다 조금 거리를 두기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계속 이야길 안하고 모른 척 하려다 보니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고 문제를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되어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것이 대책이 아니겠다 싶었다. 처음엔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마음만 더 돌아서는 듯 했다. 그러니 그렇게 멀리 불구경 하듯 있지 말고 그 사람과 관계되는 것을 겁내지 말고 그 사람을 궂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동료면 동료답게 함께 작업하는 입장에서 다그치기도 걱정하기도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 촌닭들이 싫어지고 ‘내가 뭐하고 있는지?’ 식의 슬럼프에 빠져 하기 싫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슬럼프라 할 만했던 시기는 오히려 촌닭들 과정에서의 나의 원동력이 되었고 더 열심히 나를 가꿔야겠다. 공부를 해야겠다. 흔들리지 말고 내 중심을 잡아야 겠다는 등 많은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마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 땐 촌닭들을 한 학기 더하겠다는 학습계약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었다. 그 때는 내가 촌닭들에서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었다. 몇몇 사람들이 아예 학교도 거의 안 나오는 것이 잦아지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나를 흔들리게 했다. 학습계약을 하면서 히옥스가 물어보신 ‘촌닭들 안에서 너는 뭐니?’ ‘열린작업장 안에서 너는 뭐니?’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것일까? 란 생각이 들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생각은 내게 더 오기를 부리라고, 더 의미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촌닭들 워크숍을 하다보면 이런 말들이 많이 나왔었다. “니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난 뭐가 되니?” “왜 혼자서 다 하려고해?” “니가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 들이었다. 이 질문들처럼 역할에 대한 문제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길찾기 때부터 고민했었고 누군가의 ‘공연팀이었어?’ 란 질문에 그리고 촌닭들 안에서 혹은 열린작업장 안에서 내가 무엇일까? 를 생각하게 되면서 더 깊어졌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면서 나에게 중요한 고민들 중 또 하나는 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 이었다. 이건 역할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이미지를 만든다 라기 보다 나의 이미지를 다듬는다 가꾼다 뭐 이런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해보고 부족한 것에 대한 노력하는 과정이 자신을 다듬는,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자신을 만들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같다.

길찾기 때는 나와 다른 것을 가진 사람들을 닮고 싶어 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볼 줄 알고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고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촌닭들 안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성실하다,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한다. 뭐 이런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거기에서 만족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는 관심 있는 일을 더 파고들어보고, 주어진 것 보다 한발 씩 더 나아가서 공부 할 수 있게 되었다.

4. Learning by doing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살던 우리 집 앞 골목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어 밤이 되면 바로 한치 앞밖에 안보이게 깜깜했다. 나와 친구들이 유일하게 용돈을 쓰던 소비의 공간은 동네 슈퍼였다. 밤은 깜깜하고 훤한 낮엔 나무 밑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시는 어른들이 많은 전형적인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같은 친구들과 한마을에서 태어나 유치원이건 학교건 학원이건 함께 다니면서 친구를 새로 사귈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특별히 친구를 사귀는 법도 몰랐다. 그냥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사람들이 좋았다. ‘도시’ 라는 커다랗고 낯선 공간은 나에게 그저 먼 곳 이었다. 계속 그런 곳에서 지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생을 다 알 만큼 작을 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한 학년에 13반이나 되는 학교의 규모에 나는 단번에 기가 죽어버렸다. 이런 데를 어떻게 다니지 겁이 났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 속에 나 하나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지금 막 외지에서 전학 온 나였지만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나를 누구도 새로워하거나 어색해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 반에 어떤 아이겠거니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시, 사람이 많고 건물이 높고 복잡하고 지하철이 다니는 곳, 이건 나에게 13반의 학교보다도 더 공포스러웠다. 밖에 나가서 조금만 돌아다니고 오면 사람에게 치이는 것이 너무 힘들어 파김치가 되곤 했다. 사람들의 빠른 걸음에 맞춰야 될 것 같아 온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13반의 학교와는 확실히 달랐다. 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이 설렜다. 앞으로 뭘 준비해야하고, 뭘 해야 할지 학교 다닐 때처럼 확실하진 않았지만 내일 뭐할지가 더 기대가 됐다. 이제 사는 환경이 달라진 것처럼 나도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처음 도시에 와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레임의 기억이, 작업장학교의 주니어 과정 수료를 앞두고 다시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평화로운 기억과 익숙한 경험을 떠나 도시에서의 삶은 종종 두렵고 불안했음에도 그 감정을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레임으로 바꾸어 낼 수 있었다. 지금은 또다시 하자에서 접한 새로운 문화와 학습의 경험들을 들고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이미 하자에서 지은 ‘진’ 이란 이름이 본명보다 익숙해 졌고 매 학기 초 학습계약서를 쓰고 매 학기 말 에세이를 쓰고 쇼하자를 하던 하자의 문화 속에서 그리고 촌닭들이라는팀 안에서 공연자로서의 경험을 하면서 매체를 통해 학습을 하는 learning by doing 의 새로운 학습 방법을 진하게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하자 작업장학교를 수료하면 이후의 나에게 필요한 학습을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판돌’이 만들어준 판에 죽치는 ‘죽돌’로서만이 아니라 이제 판도 스스로 만들고 그곳에 죽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할 지도 모른다. 2007년 처음 대면한 도시와는 다른 또 다른 도시를 향한 여행의 시작을 위해 하자에서의 기억을 고이고이 싸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여행가방 깊숙이 잘 챙겨 넣을 것이다. 다시 내가 발을 딛게 될 새로운 도시에서도 그것이 쓸모 있게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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