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낯선 것을 마주하는 용기_유메

낯선 것을 마주하는 용기

낯선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늘 익숙한 패턴을 고집했었다. 그것은 꼭 학습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변화나 관계의 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곳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고 비슷한 방식의 관계 맺기를 반복해왔다. 그런 내가 10년 동안 고수해오던 학습의 공간을 벗어나 낯선 하자에 오게 되었다. 얼핏 보면 대단한 결심이라도 하게 된 것 같은데, 사실 별건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것을 한다고 하기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고(2006년 ‘놀자’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다.) 어쩌다보니 길찾기 과정에 턱하니 붙어버려서 얼라리요? 하고 자퇴서를 제출했다. 어? 어어?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하자였다.

나는 별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하자 생활에 적응했다. 그것은 적응했다기보다는 하자를 내 입맛에 맞게 받아들인 것 같은데, 수료 에세이를 쓸 때쯤 되어 전체를 뒤집어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익숙한 것을 찾는 습관은 꽤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항상 열심히 했고 내가 잘 못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그게 잘 안되면 그래, 이건 나한테 안 맞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 타협(이라 쓰고 포기라 읽는다)을 봤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 것으로 인해 내게 주어진 또 다른 방향들을 스스로 걷어내고 잘라냈던 것 같다. 길찾기 때는 노리단이 그런 경우였고 1학기 때는 TOT가 그런 경우였다.

길찾기에서 주니어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팀(매체)을 선택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영상은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낯선 매체였고 디자인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가장 익숙한 매체였다. 나는 다시 디자인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 선택임에도 마음 한 구석은 어딘가 편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자꾸 “나는 너무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서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고민해도 물음은 늘 제자리에서 빙빙 돌뿐이었다. 아마도 진짜로 답을 알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정말로 그게 궁금했다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쫓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나, 일종의 변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그 순간 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자 방패 막이었다.

1학기 때 했었던 드로잉 프로젝트와 그림책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쉽게 관심을 주고 재미를 붙였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과 생태, 환경에 대해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생각해가며 작업해야 했던 TOT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었고 잘 모르는데다가 관심까지 없었던 주제를 마주해야 했다. 덕분에 당시 프로젝트 담당 판돌이었던 테디는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하셨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끝까지 왜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들로 인해 두 손 두발 다 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패턴은 2학기 때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2학기 때 새로 깨달은 사실은 관심이 있다고 해서 모두 끝까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학기 때는 대규모의 공동 작업을 했다. 캐치스코프와 TOT가 모여서 열린 작업장 PV를 만드는 일을 했다. 기존의 하자작업장학교 PV로 쓰이던 고래이야기가 하는 이야기와 지금의 작업장 죽돌들이 하는 이야기는 또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업의 초반부터 ‘비디오의 형태는 애니메이션으로 갑시다.’ 라고 이야기 했고 작화와 관련해서 캐치스코프 쪽에서 TOT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 해왔다. 총 열 명의 제작진이 모여서 함께 작업했다. 원래 예전부터 애니메이션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고, 영상이라는 매체가 나에게 있어서 꽤 흥미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꽤 들뜬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들뜬 마음과 설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기 싫어, 어려워, 못해! 로 변신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뿐이지.

대부분의 이유는 하나같이 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음에 있었다. 작업은 대다수의 인원이 함께 했던 만큼 생각처럼 쉬 되지 않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도 더뎠다. 머리가 많으니 생각도 의견도 가지각색이었다. 뭔가 의견이 있어도 대부분 우물쭈물하다가 말 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리고 나면 성에 차지 않는 의견들로 결론이 났다. 나는 이런 회의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내 의견을 물어봐 주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그런 회의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혼자가 아니었다. 회의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처음 해보는 대규모의 공동 작업은 어려웠고 맘대로 되지도 않았다. 잘 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니 짜증만 늘어갔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를 일일이 빠뜨리지 않고 챙겨주고 배려해 주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작업에 대한 어려움이 늘어가고 작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나는 점점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집에는 함께 작업할 사람도,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작업에 대해 싸그리 잊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집으로, 집으로 기어 들어갔다. 몇 주 동안은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잽싸게 귀가했고,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과 어울려 이대나 홍대거리를 배회했다. 학교에서의 작업은 하자 정문을 벗어나는 순간 끝이 났다.

하기 싫은 것,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한 투정으로 울상이던 내 얼굴은 거기 둔 채 주니어 3 학기가 찾아왔다. 새 학기와 함께 주말영상학교도 시작했다. 주말영상학교는 세이랜의 추천으로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해보고 싶었던 거고, 또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마침 하라니까 했다. 많이 생각 할 것도 없이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봤으면 세이랜이 왜 내게 주말영상학교를 권했는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 때에는 그 조금을 생각해 볼 생각조차 못했었다. 주말영상학교는 시작부터 굉장히 두근두근했다. 예전부터 디자인과 동시에 하고 싶었던 작업이기도 했고 일종의 동경도 있었던 것 같다. 막연히 ‘신식 매체’ 같다는 느낌으로. 낯선 용어들과 카메라를 만지며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너무너무 신기해서 밤에 잠도 안 올 지경이었다. 집과 학교의 명확한 경계를 흐리게 한 것 역시 주말영상학교였다. 집으로 가는 길과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기 전 시간의 대부분을 이번 주 주말에는 뭘 찍을까 고민하는데 썼다.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이 신기한 도구를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고 말리라!’는 의욕에 불타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가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찍었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반드시 잘하고 말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장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원 씬 원 컷으로 연습의 흔적이 보인다고 칭찬 받았던 나는 세 컷 프로젝트에서 미술에만 신경 썼을 뿐 연출이 전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왜 처음 접하는 매체에서 잘 해야 하는데? 좀 못하고 어수룩하면 안 되나? 좀 어설프더라도 꼼꼼히 잘 챙기고 배워 나가야 하는데 어서 ‘잘’하고 익숙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낯선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하지 못하면 못 할까봐 불안하다. 실수하고 못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싫어했다. 무언가를 골머리 썩고 쓴 소리 들어가며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 것이 답답하고 속이 터졌다. 세이랜은 나의 그런 모습 때문에 주말영상학교를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해 주셨던 것 같다. 나는 디자인과 드로잉이 ‘이것이 정말 내 매체고 언어다!’, ‘드로잉과 디자인이 아니면 안 된다!’ 해서 그것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나한테 있는 자원이고 이미 오랜 시간 익숙해져 있고 그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마도’ 재미가 없을 거고 잘 하지도 못할 테니 그 것만 고집하는 것 이다. 익숙한 것에만 매어있지 말고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고, 생각 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셨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문제점도 몰랐을 뿐더러, 당연히 문제를 모르고 있었으니 고칠 생각 역시 전혀 하지 못했다. 주말영상학교의 마지막 과제인 단편영화를 제작할 때에도 내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꺼내서 풀어 놓았다. 이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대체 무엇이며 왜 나타났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쉽게 가져다가 쓰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사이>였다. 큰 고민 없이 호박처럼 굴러들어온 이야기는 좋은 소식들도 가지고 들어왔지만, 지금까지 직접 부딪히지 않았던 문제들과 미뤄왔던 고민들을 한꺼번에 우르르 몰고 들어왔다. 정말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 째’였다. 그 호박이 썩은 호박인지 단 호박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화 <사이>는 이듬해 봄, 여성영화제에 출품되어 꽤 호평을 받았다.

영화제에 영화가 출품되고 나서, 처음에는 무작정 좋고 기뻤다. 다음 학기에 영화를 찍겠다고 다짐한 것도 거의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작정 좋고 기쁜 것은 뒤로하고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지? 다짜고짜 ‘그 분이 오셨습니다. 그냥 feel 가는대로 확 찍어봤어요.’ 따위가 먹힐 리가 없었다.(먹혀서도 안됐지만) 이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대체 무엇이며 왜 나타났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채로 영화를 찍었고 카메라를 놓는 순간 작업도 같이 끝내버렸으니 겁이 나는 것이 당연했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을 꺼내서 찍은 것 뿐 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영화를 찍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 해 뒀어야 할 것들을 놓고 그제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4월 중순, 드디어 여성영화제가 열렸다. 계속 자연스럽게 나오던 이야기들과 어디서부터 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익숙한 이야기들. 그것들에 대해 싫어도 품어야 할 의문들을 품고 억지로 질문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진심으로 궁금해졌었다. ‘너, 어디서 온 거니?’ 여성영화제에 있을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답했다. 관객들이 어떤 질문을 할까? 내가, 나의 영화와 함께 만나게 될 낯선 관객들의 모습을 상상하자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영화가 완성되고 하자 내부에서 상영되었을 때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시간의 단 한명의 질문자와 그 질문을 기억한다. 당시 운영부에서 근무하시던 ‘바다’라는 판돌이었는데 상영이 끝나고 그렇게 물어보셨다. “이 영화에서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나요?” 말문이 콱 막혔다.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냥.. 나는 보여줬으니까 받아들이는 건 관객의 몫, 이라며 무책임하게 내팽겨 쳐 뒀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부터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대답은 해야 했기에 대답은 했다. 대충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짜 맞춰서 횡설수설 하는 것으로 대답을 마쳤다. 왜 내 영환데 나도 몰라?! 그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관객과의 대화 때 횡설수설한 내 모습이 너무 쪽팔려서 또 한 번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도 진지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었다. 대충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것을 정리해 보고 그게 답이겠거니, 어영부영 또 넘어갔었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서 나온 몹쓸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성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상영되면서 관객과의 대화라는 무시무시한 자리가 또 다시 만들어 졌고, 이번에는 똑같은 실수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기 늦은 고민들을 얼싸안고 끙끙거렸다. 그러고 나서 맞은 관객과의 대화는 다행스럽게도 순조롭게 잘 진행 되었다. 뒤늦게나마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성영화제는 내게 또 한 번의 기회와 함께 큰 격려를 주었던 경험이었다. 내 영화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자상하고 다정한 관객들을 만나면서 영화는 단순히 눈에 보여 지는 시각효과가 아니라 내 입이고 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두 번째 영화 <열 아홉>을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영화, <열 아홉>은 절대 <사이>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이>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 골머리를 썩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어떤 아이템을 가져와도 항상 쓰고 나면 <사이>가 되어있었다. 계속 <사이>의 굴레를 벗어나질 못하고 쳇바퀴 돌 듯 그 안에서 계속 빙빙 돌았다. 이대로는 무엇을 써도 계속 똑같은 이야기만 하겠다 싶었다. 다시 한 번 <사이>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들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배척해 버렸던 시간을 뛰어 넘어 낯선 카메라를 잡았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를 접하고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그에 따른 공부와 사고의 영역도 넓어져야 했는데, 게으른 건지 나르시시즘인지(아마 둘 다인 것 같다.) 나는 새로운 매체를 들고 또다시 나를 향해 돌아왔다. 내 안에서 빙빙 돌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 <사이>를 만들었다. 두 번째 영화 역시 내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는 ‘나’였고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 역시 ‘내 얘기’였다. 계속 시선을 밖으로 두지 않고 안으로만 살폈다. 더 들어오는 무언가도 없었고 빠져 나간 무언가도 없었다. 고여 있는 물처럼 가만히 있으니 아무리 탈탈 털어도 계속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문제점을 깨달았다.

나는 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것들에 무관심 하다. 크게 신경 써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사회의 뉴스나 기사거리에 대한 소식이 느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인데, 새로운 것이나 학습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 시켜 나가는 것이 그런 뉴스 소식을 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뭐 큰 지장 없는 것. 내가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그냥 ‘지적 허영’ 같은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내 할 일만 잘하고 내 것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편협한 생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영화 <열 아홉>은 그런 편협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온 영화였다. 계속 반복되는 <사이>의 틀을 깨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이 이야기들이 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를 찾았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내가 신경 쓰고 생각해 왔던 문제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익숙한 것을 끌어다가 쓰고 있었다. 다른 것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도 내가 공감할 수 없었고 몇 줄 쓰지 않아 금세 막히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또 다시 나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계속 익숙하게 보아왔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찾기로 했다. 늘 과거를 이야기하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현재의 나를 찾았다. 지금의 나. 지금 내가 놓여 진 상황과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바라는 것들까지. 그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무엇을 써도 자꾸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솔직하게 지금 눈앞에 놓여 진 내 상황과 고민들을 마주보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내가 보낸 시간들과, 내가 취해온 행동들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열 아홉>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사이>와는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고 내 이야기를 담아 나오는 대로 지껄이던, 처음으로 말문을 튼 영화가 <사이>였다면 <열 아홉>은 그것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영화다. 처음 카메라를 들었던 그 때처럼 무작정 내 할 말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 어떻게 읽고 보는지, 그리고 나는 내 영화를 어떻게 읽히고 보여주고 싶은지 까지도 책임을 가지고 연출 해 나가고 싶었다. 내 영화라고 해서 오직 내 할 말들과 100%의 나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내 안에 갇혀 빙빙 굴러봤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거울이 아닌 세상을 봐야한다. 거울만 바라보던 내게 거울 너머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 할 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시작된다. 또 다른 것을 내 안으로 들이고 품고 있던 것 중 어떤 것은 흘려보내야 한다.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기억은, 2학기 때 캐치스코프와 TOT가 모여 함께 만든 열린 작업장 PV를 전체 상영 후 히옥스가 하셨던 말씀이었다. PV의 내용은 각자 성격이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인데 그 안에서 주인공들은 직접적인 방법들에 모두 실패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엉뚱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게 된다. PV를 본 후 히옥스가 하신 말씀은 이런 내용이었다.

‘하나의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돌아서만 가지 말고 그것에 끝까지 부딪쳐 돌파해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아아, 그런 것이 필요하구나. 그렇지. 하고 끄덕끄덕 넘어갔었는데 지금에 와서 자꾸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나의 2년 반을 돌아보며 그건 정말 내 시간들에 필요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2년 반의 시간 동안 그런 도전이 있었던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학습의 방법들을 경험했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카메라를 든다. 공부는 책상 맡에서 연필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늘 익숙하고 힘들지 않은, 내 ‘적성에 맞는’ 학습 방법만 골라내던 나쁜 편식습관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 하지만 더 이상 2년 반 전처럼 하기 싫으니까 재미도 없고 힘만 들 거야. 라고 처음부터 선을 그어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없을 것이 뻔한데도 자꾸만 하고 싶어지는 공부들이 늘어난다.

카메라를 들고서 부터, 이전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수료식 이후의 목표가 생겼다. 더 크고 다양한 세계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싶다. 이야기를 꺼내면 거기에 화답해줄 관객들을 더 많이많이 만나고 싶다. 아기들이 ‘아바’나, ‘마마’ 같은 어눌한 발음으로 첫 단어를 떼었다고 해서 ‘이제 말을 할 줄 압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겨우 입을 열고 첫 단어를 내뱉은 셈이다. 좀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보아야하고 더 많은 소리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기까지 2년 반이라는 시간을 하자에서 지내왔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종이 위에서 그려지던 이미지들을 프레임 위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이미지들로 만들어내고 있다. 카메라 대신 책을 든다고 해서 카메라를 다시는 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아주 만약에 내가 카메라를 다시 들지 않는다고 해도 카메라를 들었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들은 다만 모양이 바뀔 뿐, 또 다른 시간 위에 살처럼 붙어 내 역사를 풍성하게 한다. 계속 다른 형태를 취하면서 학습을 지속해 나가고 학습의 지형을 끊임없이 수정, 보완 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을 배우며 사유하고 인식했던 것들이 카메라를 들 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기억한다. 카메라를 통해 나는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것에 더 큰 힘과 깊이를 심어주기위해 이제 또 다른 형태의 학습을 시도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이 어렵다고해서 피하고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서는 ‘힘’을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더 이상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타협을 보지 않는다. 카메라를 잡을 때 드는 고민과 수많은 어려움이 어떤 형태로든 내게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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