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수요일

우리의 시공간이 겹치는 순간_포디

우리의 시공간이 겹치는 순간

규연 안녕하세요 규연입니다. 열아홉살이고 음악을 하고 있어요.

포디 앗. 반가워요. 저도 음악을 해요. 전 약 2년정도 브라질리언 퍼커션을 주로 연주해 왔는데, 규연의 음악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저는 포디라고 해요. 저도 열 아홉이예요.

규연 우리 둘 다 열아홉...이제 우리의 10대가 거의 끝나 가네요.

포디 그리고 저는 동시에 하자작업장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의 2년 반의 학습도 마무리하는 시점이예요. 공교롭게도, 학교를 수료하는 시점에 열아홉이라니, 뭔가 제대로 전환기를 갖는 느낌이랄까요....

규연 (웃음)그렇네요..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독사 두 마리가 있었어요. 그 중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에게 물었죠. “우리 독사 맞지?” 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맞아 근데 그런건 왜 물어?” 그러자 질문한 한 마리가 “지금 내 혀를 깨물었거든.”

포디 (웃음)그거 미셸공드리의 <도쿄>에 나오는 얘기죠? 저도 그거 재미있게 봤어요. 마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혹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 같다고 느꼈어요. 스물의 문턱에서 할 법한 질문이죠. 꼭 우리 같네요.

규연 그렇죠(웃음)

규연 2년 조금 넘게 브라질 음악을 해왔다고 했잖아요? 그 전에도 음악을 했었나요?

포디 그 전엔 힙합을 했었어요. 비보잉.

규연 하자작업장학교서 ‘음악’ 을 한다는 건 비보잉, 혹은 힙합과는 다른 의미인가요? 사실 저도 음악을 한다. 고 쉽게 말했지만 포디가 말하는 음악은 무엇이지요?

포디 아마도 그냥 ‘음악’이라기보다는 ‘학습’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데..... 지금 수료식을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모든 학습을 해오는 과정에서 ‘개인’으로 해왔던 학습은 얼마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중요했던 한 부분은 제게서 출발하는 것이지만요. 처음엔 음악을 한다는 건 제게 분노의 표출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없었던 데에 대한 허무함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했던 몸부림이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춤을 추기 시작 했는데 그 때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던 비행소년의 모든 불만을 풀어주는 것은 폭력이었어요. 불만은 풀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가 다시 저에게 되돌아와 상흔이 되어갔어요. 그러다가 비보잉이라는 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격렬 했던 몸짓에 반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사실 음악을 느끼고 그것으로 뭔가를 표현한다기 보다 ‘탈출구’로써 사용 했었죠.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사실 보지 못했던 것일 거예요. 그러다가 마리학교라는 중등대안 학교에 편입을 했어요. 그 때에도 음악은 여전히 탈출구일 뿐이었지요. 사실 “예술가의 책” 이라는 수업을 듣기 전까진 모든 행위가 그래 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 수업을 듣게 되면서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뻗어나온 경험들을 제 방식으로 책에 담아 보았었지요.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담아낸 아트북을 만들어본 후에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고, 나의 행위들도 탈출구를 찾기보다는 문제에 직면하고자 했지요.

하자 작업장 학교의 죽돌로서 생활하게 되면서는 조금 더 많은 생각들과 고민들을 필요로 했어요. 특히나 저는 공연팀의 멤버인데, 팀이 우선시되는 공간에 있다보니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다 자기 자신들의 문제로 가져 갈 수 밖에 없었죠. 제게 처음 다가왔던 ‘학습’이라는 것은 팀 작업 혹은 팀이라는 생명체와도 같은 까다로운 것을 알아 가는 것이었죠.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팀을 거치지 않으면 의미 없었던 시간들을 보낸 것 같아요.

규연 말 끊어서 미안하지만, 그래서 포디에게 브라질음악이 뭐였다는 거죠? 제 말은 작업장학교에서의 ‘학습’으로서 말이에요.

포디 (웃음) 아. 참.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긴 하죠. 약간 정정하자면 우리는 혹은 저는 공연을 통해 학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2년 동안 제가 해왔던 것은 <음악 =공연>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라질의 악기와 리듬과 노래들을 가지고 무대에 서긴 했지만 사실 브라질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지요 (웃음). 그 악기들을 칠 때 발산하게 되는 즐거운 에너지도 좋았고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이 호응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그리고 가끔은 작은 악기를 가지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분위기도 좋았구요. 결정적으이미 공연팀에서 하고 있었던 것을 따라 간거라고 볼 수 있지요. 이왕 하게 된 것 열심히 가지고 놀아보자 라는 단순한 마음 이었던 거예요 (웃음).

규연 그럼 다시 한번 묻겠는데, 포디가 했던 음악, 학습이라는 것은 도대체 뭐였어요? 공연=음악 이다? 어쩐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은데요?

포디 중요한 질문인 걸 알면서도 어쩐지 대답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네요. 글쎄....“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 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무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 혹은 “기획”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나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해야 될 것 들이 많았죠. 사실 1,2학기 때는 촌닭들(촌닭들이 저희 공연단의 이름이었어요.)에게 공연은 활력을 파는 것이라는 생각 정도가 전부였지요. 어느 공연에 나가던, 전 웃고 날뛰면서 사람들에게 활력있는 이미지와 경쾌하고 빠른 리듬들을 들려주며 다니기만 했지요. 촌닭들의 슬로건은 ‘활력을 팝니다’ 였거든요. 그 때는 무대가 왜 웃어야만 하는 장소인지도 모르고, 마치 마약을 한 것 처럼 어떤 열기에 매료되어서 무조건 몰입몰입몰입 하는 곳 이었던 것 같아요.

3,4학기로 넘어오면서는 1,2학기 때 했었던 몰입몰입몰입의 열기도 점차 사그라 들고 무언가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음악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장으로 공연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공연을 제외한 학교의 프로젝트나 인문학 학습들과의 연결 고리를 조금씩 찾으려고 노력 했었어요. 생명평화결사대의 초청을 받아 그들의 마지막 걸음을 축하해 주는 공연을 했을때는 조금 다른 형식을 시도해 보았었지요. 이야기를 넣고 시를 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축복의 말 같은 것들을 공연에 하나 둘씩 넣어갔던 거예요. 그런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서야하는 무대가 어떤 무대인가를 고민해보고 공연은 어떤 마음을 움직여서 하는 것인지를 조금씩 배워갔어요.

그리고 Save My City 라는 주제로 작업장 학교 전체가 작업을 진행 했을 때에도 공연팀 역시 테마가 있는 공연, 슬로건을 내걸고 길에서 노는 것 을 해봄으로써 좀 더 학습과 공연을 연결 짓는 방식을 연구 했던 것 같아요. 이 공연들이 계기가 되어서 그 후의 공연들은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살리는 방법을 연구했지요. 결국은 공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했었던 고민, 준비의 과정, 공연을 하면서 행했던 액션들이 제겐 좋은 학습이었던 셈이죠. 이제 대답이 좀 되었을까요?

규연 음....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뮤지션이 되고 싶은 저에게는 나만의 세계가 담긴 음악을 만들지 못한 채 공연을 기획하거나 팀 안에서의 갈등을 고민하는 포디의 학습이 조금 낯설기도 해요.

포디 물론 규연이 생각하는 음악도 좋지만, 그러기에 앞서서 저는 어떤 준비의 과정을 해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규연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하고 싶어요. 포디는 ‘동료’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사실 ‘동료’라는 말을 쓰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확실히 정의하기 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동료’라는 말속에 담겨있는 ‘같이’, ‘함께’ 의 의미까지도.....

포디 맞아요. 사실 내가 하자에서 학습했었던 것의 반은 ‘함께 한다는 것’ 으로 압축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잘 설명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실은 많은 슬럼프 들이 있었어요. 시작은 2학기 중반쯤 이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학교를 자주 빠지게 되었어요. 어떤 자신감 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나 혼자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병원에 가서 매일 앉아 있었고, 하자에서 멀어지면서 내가 맞닥뜨렸던 문제는 팀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의 공백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닌 다른 팀원들이 수습 해야 했고, 난 연락을 끊고 ‘개인적인 일’ 을 핑계 삼으며, 내가 구멍 낸 일들에 대한 책임 회피를 했지요.

규연 ‘함께’한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늘 ‘개인적인’일들과의 통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지요.

포디 그 어려움에서 조차도 도망치고 만 것이 되어버렸지요. 그 때 쌓아 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난 어떤 것도 아닌 것만 같아서 괴로웠었어요. 그리고 또 그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나누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저 ‘개인’적인 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랬을 뿐. 그래서 팀원들과 많이 싸우고 결국엔 모든 것을 실토했지요. 그렇지만 무언가 해결 되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고 얘기한 시점에서 부턴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 자체를 조심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린 것이죠.

규연 그렇지만 늘 팀안에서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상황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을텐데요? 그 이후에도 함께 공연을 하긴 했나요?

포디 머지않아 방방파티라는 학기말 쇼하자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같이 연주를 했어요. 신이나서 뛰어놀았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쇼하자에 참여하면 안되는 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2학기땐 학교에 나오질 않았으니 아무것도 한게 없었지요.... 그런데 그 방방파티가 나에게 어떤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고 만거에요. 내가 계속 열심히 하는 포디로 있을 수 있는 알리바이를 말이죠.

규연 그렇지만 듣고보니 방방파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이전의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포디를 받아들여준 팀원들에게 감사하면서 다음 학기를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 같아서 말이죠.

포디 그 말이 맞긴 해요. 그랬기 때문에 내가 지금 동료라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으니까요. 방방파티가 끝나고 그 다음 학기는 만회와 재기의 학기였어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그 때 처음 어떤 특별한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었던 때이기도 했지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도 동료들 이었으니까요. 이때쯤 지난했던 연애도 끝이 나고 난 괜찮아를 연발하면서 학기를 열심히 보냈지요.

아쉬웠던 학기였어요. 너무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기도 했었고 말이에요. 3학기를 열심히 보내고 나서 4학기 중반 또 한번의 참극이 일어 났어요. 마치 불행의 패턴이라도 있는 듯이 말이지요. 이번에도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내 주변, 그렇지만 내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고 또 다시 학교에서 멀어지고 말았지요. 이번엔 일이 생기고 나서 바로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대답을 바라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난 힘들었고, 내게는 벅찬 일이었습니다. 묘한 감정까지 섞여 들어가면서 3학기 때 가지고 있었던 동료에 대한 생각을 다 잊고 말았어요. 이상한 글을 감정적으로 써버리고 수업도중에 하자를 나가버렸어요. 그대로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지요.

“내가 아는 긍정적인 임규연은 어디 간거지? 이제 곳 성인이 될테고 그런 일들은 니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고 너의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니 어머니께 감사해라. 그리고 힘이 분명히 들것이지만 너는 너와 음악으로 공유하는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니 그러면 주저 말고 나누고 같이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라(웃음)”라는 대답이 돌아왔지요.

규연 팀, 동료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같이 한다는 것은 뭘까요? 다시 한번 궁금해 지네요.

포디 간단히 말하면 내가 개인적인 일들로 힘들어 할 때 함께 고민해 주면서 고통을 좀 덜어주는 사람들 이지 않을까요? 그냥 믿으면 되는. 그리고 우리가 죽 공부했었던 이 시대에, 다르지만 비슷한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규연 달리 생각하면 공동체... ... 가되는 건가요? 윽.. 갑자기 안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나는 오래간 공동체라는 것을 부정해 왔었는데....포디는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하자에서 정확히 경험하고 느꼈었던 것 같네요.

포디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으로 내 영역 넓히기라는 것을 고민했었어요. 영화 Go를 혹시 본 적이 있나요? 주인공인 이정호가 주먹을 쥔 채 팔을 앞으로 뻗고 자신의 영역을 한계를 아버지로부터 배우던 장면이 있어요. 이정호가 선택했었던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방법은 원을 깨고 밖으로 달리는 것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주먹을 쥔 손을 펴고 다른 사람의 영역과 내 영역을 융화하는 것 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으로 그 사람들과 내가 떨어질 때에도 내 영역은 줄어들지 않는 거지요. 참 서로 고마운 관계들이 아닐까 싶네요.

규연 이제 수료를 하게 되면 하자라는 공간을 잠시 나와서 포디의 동료들 모두가 각자 다른 시간을 살텐데... 아쉬워요?

포디 아니 아쉽지 않아요. 나는 우리의 시공간이 겹쳐있는 시간동안에 서로에게 들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헤어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가 겹쳐지는 순간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내야지요. (웃음)

규연 나는 늘 음악을 한다고 우기곤 해요. 그건 나의 존재증명같은 거기도 하고, 내 삶의 길을 내 줄 것이라 믿는 뭐..그런 것...같기도 하고요. 어쨋거나 음악도, 길도, 인생도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거겠지요? 그 모양을 조금씩 바꾸어 내면서, 인내심 있게 말이죠. 포디와의 대화 즐거웠어요. 그리고 수료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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